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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장쩌민 일생 업적 및 연보 정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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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장쩌민 일생 업적 및 연보 정리

호야의 일상 2022. 12. 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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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장쩌민 (江澤民) 은 1926년 상하이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후에 난징 중앙대학 문과에 입학하여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이후 1945년 공산군에 입대해 항일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50년대 후반부터는 베이징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48년 국민당 정부 군대 내 부패 척결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1951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뒤로는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사상 연구에 몰두했고 1955년 소련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스탈린주의 이론을 공부했으며 1958년 모스크바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듬해 고국으로 돌아와 모교인 난징 중앙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6년 문화 대혁명이 발발하자 잠시 공직에서 물러났으나 1970년 복귀하여 부총장직을 맡았다.



1975년 마오쩌둥 사후 집권한 덩샤오핑 체제 하에서는 국무원 부총리 및 군사위원회 부주석 자리에 오르며 승승장구했고,. 1978년 12월 제11기 3중전회에서 차기 지도자로 지명된 이래 1980년대 초반 덩샤오핑 정권 수립 직후 국가 주석 겸 당 총서기였던 화궈펑으로부터 후계자로 지목되었고,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 진압 과정에서 실각하기 전까지 무려 18년간 절대 권력을 누렸다. 그러다가 1992년 14차 당 대회에서 양상쿤 후임으로 총리직에 올랐고 1993년 1월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 개방 노선을 천명했다. 1998년 2월 15차 당 대회에서 정식으로 국가 주석에 선출되었으며 2003년 9월 16차 당 대회에서 은퇴 선언을 하기 전까지 8년간 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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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사망한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장쩌민 (江澤民)은 공산주의 이념 실현을 위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으며 덩샤오핑과의 협력관계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 독점욕 및 부패 문제도 존재했고 이로 인해 당 내 원로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최초로 해외 망명길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그렇다면 장쩌민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평가 해야할까?


중국의 본격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했는데 외국 자본 유치를 통한 경제성장을 도모하고자 했다. 물론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빈부격차 증가라든지 부정부패 만연 등 사회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국이 G2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장쩌민의 이러한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만 독재정치나 인권탄압 등 부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어쨌든 지금까지도 중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니 만큼, 명복을 비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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